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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여는 글귀

혜민스님의 명언~내면의 자비빛을 일깨워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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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쳤을 때 보복심을 일으키면

내 고통만 보입니다.

그 대신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내면의 자비빛을 일깨워 상대를 이해하려 노력하면

나에게 고통을 준 상대도 결국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게 됩니다.

 

화가 난다, 그런데 그 화를 다스리지 못한다.

즉 화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화가 내 것이라 할 수 있나요?

내 것이라고 하면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하지 않나요?

화라는 손님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십시오.

 

올라온 감정은

놓아버리고 싶다고 해서 놓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마음 안에 올라오는 느낌과 생각들은

사실 내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조건과 원인에 의해 잠시 일어난

주인 없는 구름과 같습니다.

생각이나 느낌을 '잠시 들른 손님이다.' 하고 떨어져

조용히 관찰해보십시오.

 

우리 마음 안에는 히틀러와 테레사 수녀님이 같이 있습니다.

내 존재 자체에 대한 공포와 미움이 기반을 이루면

히틀러가 되는 것이고

타인을 향한 자비와 이해심이 강해지면

테레사 수녀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안 돼.'라고 했을 때,

짜증내거나 싸우지 말고 바로 '예.' 하십시오.

새로운 상황은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유도하고, 또 다른 삶의 문을 열어줍니다.

누군가 나에게 '안 돼.'라고 했을 때,

저항하면 할수록, 상황은 변하지 않고 나 자신만 더 힘들어집니다.

 

사람의 감정이건, 일이건, 현상이건 간에

전에 없었던 것이 지금 일어난 것이라면,

시간이 지나면 그것들은 또 변화해서 사라질 것입니다.

변하지 않는 영원한 진리를 구하는 자는,

그렇게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들에 집착하고 연연해서는 안 됩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중간에 그만 보는 경우가 있어요.

착한 주인공은 계속 착하고 나쁜 놈은 계속 나쁘게 나올 때 그래요.

사람은 쭉 좋은 사람도, 쭉 나쁜 사람도 없어요.

사람과 상황과 인연에 따라, 또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한 법입니다.

 

 

 

비방만 받는 사람이나 칭찬만 받는 사람은 없었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칭찬도 비난도 모두 속절없나니

모두가 제 이름과 제 이익의 관점에서 하는 말일 뿐.

- 법구경 품노품

 

누군가 비난하는 소리를 듣다 보면,

비난받는 사람이 비난받을 짓을 했다고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비난하는 사람이 사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속지 마세요!

 

다른 사람을 치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당당하지 않고 불안해서 그래요.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 대해

어떤 친구가 험단을 하기 시작합니다.

얼씨구! 하며 내가 맞장구를 칩니다.

그러고 나서 그 친구와 헤어지면서 생각해요.

나 없으면 저 친구는 나에 대해서도 조금 전처럼 험담하겠지?

순간 통쾌해도, 험담은 결국 내 살 깎아먹기입니다.

 

당신이 저를 순수하고 선하다고 느끼는 까닭은

바로 당신이 순수하고 선하기 때문입니다.

 

친구, 가족, 동료, 내 주위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것이 수행입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당신을 존경하면 뭐하나요?

바로 내 주변 사람들이

나 대문에 힘들어하고 있다면 말이에요.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존경은

내가 아닌 허상을 상상하고 하는 거짓입니다. 거짓.

 

나 자신을 낮추는 것은 사람들에게 지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조금 지더라도 내가 더 큰 것을 성취한다면

그건 곧 이기는 것입니다.

잠시 굽히면 마음의 평화, 가족 안에서의 행복, 다 같이 잘되는

큰 결과를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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