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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여는 글귀

[스크랩] 안갯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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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갯속에서

               炚土 김인선

 

스모그랑 합쳐진 안갯속에서 기름 타는 냄새가 피어오른다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큰 폭의 일교차로 몸의 균형에 이상이 생기는 듯하다

 

지나는 발자국마다 바삐 밟은 땅

멀리 문학산 봉우리를 감싸고 도는 안개가 무얼 감추고 있는지 수상하다 

밤사이 무슨 일 일어났는지

보이지 않는 장막이 새벽 도시에 내려 거리는 외로운 숨결로 가득하다

 

안개는 어린 시절 어미의 젖 쥐고 잠들던 고향의 새 소리와 흐르는 물소리를 아득히 휘어 감고

추억으로 이끄는 생생한 흙의 호흡이다

이슬 핥던 도마뱀을 숨기고 촉촉히 웃는 초록 잎을 보며 태양이 솟아오르면 금방 사라지던 안개

차가운 여운이 폐 속으로 스며들어 그날 그리움처럼 매달린다

 

갈증을 참고 걸어온 삶 속에 홀로 남겨진 듯 시야를 가리며 아물거리는 기억

그 모습이 눈물방울 되어 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나이가 들어도 가시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과 삶에 대한 연정

안개 내리는 날에는 가슴 에이도록 더한 자유로의 갈망을 느낀다

 

생각도 좁고 마음도 좁아지는 답답한 시간

어디 먼 곳으로 여행하고 싶은 마음으로 싱숭생숭해진다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 이 세상은 얼마나 넓은가

보이는 것 모두가 신비로워 경탄할 아름다운 풍경을 꿈꾸듯 바라보며

그 느낌을 적어 내리며 탄생과 죽음을 노래하고 싶다

 

짙은 안개로 반쯤 잘린 빌딩 사이 물살에 흐르듯 밑동 잘린 가로수를 흔들며

토막 난 버스가 달리고 있다

몽롱하게 시야를 가리는 안개 저것이 흐느적대며 아마 산도 베었지

군 시절 향로봉에서 바라보던 계곡마다

일도에 토막 난 거대한 산허리가 욕망의 뿌리가 끊어진 채

가벼운 섬 되어 해탈로 출렁이던 모습

 

구속을 끊는 그 자락 속으로 몸 던지든 때 느꼈던 생의 일탈

그러나 지금 미련에 칭칭 감긴 내 허리는 커다란 산보다 질긴 듯 안갯속을 걸어가도

잘리지 않는 몸뚱어리는 점점 축축이 젖어 혼만 무거워지고 있다

 

이제 오늘도 안개가 걷히고 바쁜 하루가 지나고 석양이 오면

난 주(酒)유소를 거쳐 갈 것이다

간덩이가 미처 해독 못 한 독한 알코올 분자가 직선으로 뇌에 꽂힐 것이고

휘청이는 발이 가로등과 한 판 눈싸움을 할 것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내가 소리치면

거꾸로 꽂힌 싸리비처럼 서 있던 앙상해진 은행나무가 달려들고

진짜 주유소 입구 막대 풍선 모가지가 설 듯 말 듯 약 올리는 모퉁이

울어도 울어도

시간과 위치 존재감조차 달라질 것 없는 일상이 될 것이다

 

번민을 지우려는 몸부림은 임시방편일 뿐

어제와 그제, 내일까지 변함없이 이 거리 가득 차 있는 해답은 무엇일까

그것은

안개처럼 너와 나 마지막 피할 수 없는 의무

증발

그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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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발일 듯 스산한 하늘

수천의 부리가 먼 곳 석양빛을 이끄는 까만 점 하나 보며 

복종의 편대 되어 그 뒤를 따른다

 

절제된 자유의 군무

평온 속 세찬 기쁨으로 굽이치는 저 뜻

무엇이 얽매랴

바람과 시간도 완벽한 질서에 매여 

거부하지 못할 정연함이 내게 손짓한다

그래 날고 싶다

몸을 벌떡 솟구치자 부딪혀 오는 차창

거세게 몸통 조이는

삶이란

구속의 안전띠

 

점점 멀어지는 무리 

회색의 늪 썩은 수초에 감겨 날 수 없는 나의 혼

아, 핏빛 노을 환상이 아니건만

고독한

가창오리 한 마리

 

-'고독한 이탈' 전문 -

출처 : 좋은글과 좋은음악이 있는곳
글쓴이 : 炚土 김인선 원글보기
메모 : 구름을 넘어서 해가 나올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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