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시장
炚土 김인선
평생을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와 신선한 공기 속에서
티없는 소리 듣고 살 수 있다면 우리가 원하는 파라다이스 아닌가?
고도의 물질문명에 휩싸인 현대인의 생활 속에 먹을거리 볼거리가 천차만별로 벌려져 있지만
최소한의 먹을거리 위해 찬 새벽바람에 나서는 이들이 있다
안전된 직장을 갖지 못한 도시의 일용 근로자들이다
힘든 삶에 부디 끼며 하루하루 끼니조차 걱정하면서 밥맛 없는 아침
노랗게 익은 짭짤한 젓갈 하나 놓고 찬물에 밥 말아 억지로라도 한 숟갈 뜨고 새벽 인력시장으로 나간다
새벽 인력시장엔 천일염으로 절여진 젓갈 같은 사람들이 모여든다
목수, 미장이, 벽돌 쌓는 기술자, 막일하는 잡부까지 드럼통에 불 피우고 둘러 앉아
흡사 홍등가 유리방에 앉아 손님에게 선택되길 기다리는 아가씨처럼
어깨를 펴며 힘깨나 쓴다는 모습으로 인력 사무실 소장의 눈속에 자기를 박고 있다
여름철 비가 오면 일 못하고 겨울철의 영하 기온에는 공사가 중단 되고
봄 가을 반짝 일하여 한 해 보내는 그들에게 그나마 일자리도 많지 않아 종종 되돌아가는 발길이
공원으로 향하고 담배 몇 개비 피우며 물 몇 모금에 하루를 벤치에서 보내며
지나가는 강아지 꼬리 보며 하늘 위 한숨 뿌리기도 한다
지난여름 된더위에 짠 땀이 흐른 얼굴이 잘 익어 있다
멜라닌 세포가 허물 벗겨 검둥이 만들고 견골의 아픔 수없이 참고 중력과 싸우며 이차원 평면도의 뿌려진 숫자를 조합하여 새 공간 창조한 위대한 얼굴 삭히고 삭아 단물 배인 곰 삭은 젓갈이 새벽시장에 하나 둘 나온다 비만의 혈압에 쫓기어 간기 없이 물비린내 진동하는 덜 절여진 인간 잠들어 있는 회색 도시의 거리 한 여름 햇볕에 말라붙은 천일염으로 흠뻑 절여진 윤기나는 목덜미
삭은 드럼통 속에서 썩은 듯하지만 잘 익은 소망이 어둠 헤치고 나온다
뿜어내는하얀 담배 연기는 기다림을 울대에 감으며
진국 젓갈이 손 내밀고 찬 새벽 인력시장의 얼어 있는 여명을 모닥불로 녹이고 있다
불 쬐고 있던 잡부 김氏가 팔려 나간다
아파트 신축공사 현장은 회색의 콘크리트 무덤이 솟아 있다
서리 낀 듯 차가운 작업복 바지 입고 아시바 더미 걸터앉는다
소주 한 병에 계란 한 알, 입으로 뚜껑 따서 목줄기 두어 번 꿈틀하니 반 병 비워지고
구멍 낸 계란의 흰자위 먼저 빤다
카, 한번 트림하고 남은 소주 마시고 노른자마저 빨며 바지 털고 일어선다
오야지 눈도장 받고 작업 지시따라 쌓여 있는 아시바를 어깨에 걸치니
스무 자짜리 쇠아시바의 묵직함, 언제나처럼 삶의 무게 전해진다
목수작업 단도리 하려면 산같이 쌓인 아시바 다 날라야 하는데 긴 쇠파이프 바로 세우려니
다리 후들대고 중심 잡으려 힘쓰면 겨드랑이 뻐근하고 덜렁대는 안전모 속 이마로 방금 마신 소주가 기어나온다
오전일 하고 반네루로 만든 지붕에 퍼런 천막 친 함바에 들어서니 왁자지껄대며 시끄러운 시장 통이다
스텐식판에 고등어 한 토막, 멀건 김칫국 고들 밥 받아 자리 잡는다
맞은편엔 도구방 최 노인 허연 턱수염에 김칫국 묻히며 맛있게 밥 먹고 있다
몇 달 만에 최노인의 마누라 다녀갔다
철근 잡부 일하는 양氏가 치근댄다
"형님 유, 형수님 엄청 이쁘구먼 유,.. 어제보니"
최 노인 턱 비비며 인상 쓴다
"지럴 하네, 상판때기 이쁘면 모 한다냐 거시기는 국 사발 인디"
옆 식탁 쓰미 오야지 거든다
"형님아, 형수 탓 하는교 형님 물건 삼부 데낑 아닌교, 하하"
밥 먹다가 한바탕 낄낄댄다
늦가을 볕이 따갑게 살 태우고 무거운 연결 클립 포대 여나믄자루씩 계단참마다
오르락내리락 올려놓으니 허리마저 끊기듯 아프다
삼 층 계단 바닥에 안전모 뒤집어 깔고 앉는다
목에 두른 때묻은 수건으로 땀 훔치고 담배 하나 피워무니
가을빛 가득한 하늘에 조그만 아들 얼굴 구름 위 걸쳐 흐르고 마누라 얼굴도 웃으며 나타난다
그 모습에 미소 띄우는 멜라닌색소의 구리빛 살결, 참으로 잘 익은 젓갈이다
어둑한 골목길 여느때처럼 가로등이 홀로 반겨주고 일당을 벌고 오는 김氏 걸음이 가볍다
세상 밥상에 소중한 밑반찬이 될 젓갈의 모습 그들이 우리의 풍요로운 현재를 만들었고
눈물 젖은 빵 먹으며 삶과 투쟁한 진정한 노동의 대가로 지금 모두가 살살 녹는 고깃덩이 썰고 있는 것이다
새벽 인력시장 그곳은 진국으로 숙성된 인간 젓갈을 파는 삶의 시장이다
내일도 태양이 뜨기 전 젓갈시장은 열리고 삶의 향기가 모닥불가에 필 것이다
주)
아시바: 건물 외부 비계용 철제 파이프 오야지: 작업 반장 단도리: 작업을 위해 준비하는 일
반네루: 합판에 각목을 대고 만든 거푸집판 함바: 공사판 간이식당
도구방: 창고 경비 쓰미오야지: 벽돌 작업반장 삼부데낑: 직경 1Cm의 얇은 철근
클립: 철제 파이프를 고정 연결시키는 인계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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