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음을 여는 글귀

[스크랩] 쌓아둔 잠/ 고미숙

반응형

  쌓아둔 잠 | 고미숙
  불쑥 손들이 들어온다 발목을 낚아채 거꾸로 들린 닭들
  허공 쪽으로 일어서려 푸드득거린다
  닭장차 안으로 던져지고 구겨진 다음에야 날개를 털고 몸을 바로 펴는 닭들
  철망이 가득 채워지자 어둠을 향해 트럭이 출발한다
  220볼트 태양이 줄지어 매달린 곳은 늘 한낮이었다
  때가 없는 사료와 잠들지 못한 교란의 사육
  날개도 소리도 없는 알을 쏟아내곤 했다
  낳자마자 또르르 알받이로 굴러가버리는
  동글동글한 서른 개들이 천구 한 판
  날마다 실려 나가도 그 동그라미 속엔 날개도 숨도 없다
  날지 못하는 하우스 닭장 너머로
  빨간 맨드라미 닭 벼슬인 양 꾸벅꾸벅 조는 양계장
  쓰지 않은 밤이 한꺼번에 덮쳐와 오늘은 눈앞이 캄캄하다
  바퀴가 뛰는 진동에 놀라 습관이 알을 낳는다
  처음으로 끌어안고 품어보는 달걀에선 심장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구름 사이에 잠들지 못한 별들이 휘둥그레 반짝인다
  어쩌면 이 길은 그동안 쌓아둔 잠과 밤을 정산하러 가는 길
  하늘에선 노른자위 하나가 날개도 없이 떠 있다
  노른자위 실핏줄을 타고 들어가
  계수나무 그늘에 암탉이 병아리를 품고 있다
출처 : 좋은글과 좋은음악이 있는곳
글쓴이 : 얼음새 원글보기
메모 : 잠을 이루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져만 간다
반응형